뉴욕 | 고권오현 목사 장례예배드려 - 한인 신학자의 큰 별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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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작성일19-10-09 05:53본문
뉴욕은 물론 한인 신학자의 큰 별이 졌다.
반세기가 넘은 시간 동안 후학들을 양성하고 사역자들을 배출한 고(故) 권오현 목사가 지난 9월 24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마지막 수업의 교수님의 모습을 기억하며 뉴욕신대학생의 제공]
전날인 9월 23일 월요일 수업에서도 모든 수업들을 끝까지 마치기까지 힘찬 목소리와 열정적인 강의로 수업을 이끌어오던 총장 권오현 목사의 강의에 참석했던 재학생 및 학교 관계자들은 갑작스런 소식에 당혹감을 감추질 못하며, 강의시간에 촬영했던 마지막 모습, 수업 음성을 녹음했던 마지막 모습과 음성을 돌아보며 오열하며 아쉬워하는 학생들의 모습들도 전해졌다.
못내 아쉬움과 각기 다른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는 권오현 목사의 자녀들 등 사정으로 1주일 후인 지난 9월 30일(월) 중앙장의사에서 뉴욕신학대학교 및 대학원 장으로 치러진 이날 장례예배는 전동문회장인 윤숙현 목사의 인도로 집례되었으며, 김길화 목사(6회 졸업)의 기도인도에 이어 뉴욕교협회장 정순원 목사가 말씀을 전했다.
오랜 시간동안 함께 하였던 가까운 친구들도 동참했다.
신성능 목사는 고인의 약력을 소개하며 지난 시간들을 아쉬워했으며, 이병홍 목사는 “바로 하루 전날 은퇴식을 가졌는데 갑작스러운 소식에 은퇴식장에서도 마음이 무거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는 표현을 했다. 조사에 나선 이병홍 목사는 “조사 보다 그 분과 함께 했던 추억들을 돌아보겠다”며 고권오현 목사와의 오랜 시간의 추억들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한편 유영문 집사, 한동일 전도사(30회졸업)의 조가가 있었으며, 유가족의 추도사 시간에는 조문객들도 눈물을 짓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한편, 장례위원장으로 부총장인 이현숙 목사는 참석한 조문객들에게 인사말을 전하면서 “총장님이 불편하신 곳은 있으셨지만 병원 검진을 하면서도 괜찮다고 그렇게 좋아 하시면서 헤어지고 1시간 정도 후에 이러한 엄청난 비보를 받게 되어 너무나 당황스러럽고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기에 힘들어 한 주간이나 지났음에도 믿기가 어렵고 지금이라도 총장님의 목소리가 들릴 듯 하다”고 전하며 못내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이날 장례 예배는 전이사장 김승희 목사(뉴욕초대교회)의 축도로 마쳤다.
고(故)권오현 목사는?
1938년에 출생한 권오현 목사는 부친도 목회자로서 권영진 목사님과 김계순 사모님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1962년에 한국신대(한신대.신학사)에서 국가장학금을 받으며, 연세대(신학석사) 등을 거져 196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이후 권 목사는 해군군목을 지내며 1972년에 미국으로 건너와 프린스톤 신학교를 거치면서 유대인들 신학교에서도 성서고고학을 연구하며 NYU Ph.D 학위 취득을했다.
고(故)권오현 목사는 1975년부터 한인봉사센터에서 활동도하며, 1976년에 부르클린한인제일교회를 설립했다. 1964년부터 교수활동을 시작한 권오현 목사는 한신대, 부산신대. 중앙신대, 오순절 등 강의를 하신 후 미국에서 뉴욕신학교를 이끌며 1979년 미주장신의 교수로 활동하며, 뉴욕연합신대, 나약, 찬양신대, 성결신대 등 많은 곳에서 활동하다 1987년부터 학장과 총장으로 활동하며 현재까지 권오현 목사는 약 50여권의 책자를 출간해내는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고(故)권오현 목사는 다음날인 10월 1일 오전 9시에 발인예배 드린 후 장지인 롱아일랜드의 워싱턴메모리얼 팍(무궁화동산묘지)에 안장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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